사랑이야기 (신체 언어)

애리조나의 한 인디언 보호구역에서 성폭행 사건이 일어났다. 젊은 여성의 진술에 따라 한 용의자가 수사망에 올랐지만 그 용의자의 태도는 너무나 당당하고 진술하는 내용도 그럴싸했다. 자긴 도무지 저 젊은 여성을 본 적도 없다는 것이었다. 그는 퇴근한 뒤 길을 따라 바로 왼쪽으로 돌아서 집으로 갔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바로 이때, 수사관은 그가 왼쪽으로 돌아서 갔다는 말을 하면서 무의식적으로 손이 오른쪽을 가리키는 것을 눈치 챘다. 이 방향은 정확히 성폭행 현장으로 가는 길이었다. 수사관은 그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단정했고 집중적인 추궁이 이어졌다. 결국 그는 자신의 범행을 자백했다. 이것은 실제로 전 FBI 첩보특별수사관 조 나바로의 경험담이다.

상대방의 얼굴 표정을 보고 그 사람의 진심을 알 수 있을까? 사회학자들은 문명화된 인간이 이제는 얼굴 표정을 숨기는 일에 점점 능숙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보통사람들은 상대의 얼굴표정에 따라 주관적으로 상대의 마음을 해석하게 마련이다.

17세기 뛰어난 미모의 궁궐 나인 장옥정, 그녀의 얼굴에 살포시 스치는 한숨 섞인 자조의 빛이 오히려 어린 세자 숙종의 마음을 설레게 했다. 수없이 드라마로 각색된 야사에서는 이것이 이미 계산된 장옥정의 ‘남성 홀리기’였다고 이해한다.

사사기에 등장하는 천하의 삼손도 여자의 눈물에 넘어간다.

“그래서 삼손의 아내는 삼손에게 울며 말하였다. ‘당신은 나를 미워할 뿐이지. 사랑하지는 않아요. 그러니까 당신이 나의 나라 사람들에게 수수께끼를 내놓고도, 나에게는 해답을 가르쳐 주지 않았지요‘ 삼손이 아내에게 말했다. ’이것봐요. 내 부모에게도 알려드리지 않았는데, 어떻게

당신에게 말할 수 있겠소?“ 그러나 그의 아내는 삼손에게 이레나 계속되는 잔치 기간에 계속 울면서 졸라댔다. 이레째 되던 날 삼손은 드디어 아내에게 수수께끼의 해답을 말해 버리고 말았다. 그러자 아내가 그 해답을 자기 나라 사람들에게 알려 주었다“삿 14:16-17.

행동심리학자들은 얼굴이야말로 사람이 가장 자주 감정을 속이고 숨기는 신체기관이라고 말한다. 그런데도 대부분 사람들은 얼굴부터 표정을 읽고 그 다음에 점점 아래로 내려온다는 것이다. 심리학자들은 ‘신체 언어가 의도된 의사소통뿐만 아니라 의도되지 않은 신호를 포함 한다’라고 말한다. 또한 함께 있는다고 가까워지는 것이 아니라 친밀한 관계를 맺기 위해서는 함께 있는 70퍼센트의 시간은 시선을 나누어야 한다고 조언한다.

주일에 교회 갈 때마다 프리웨이 출구에서 늘 만나는 명랑한 거지 제프가 한동안 안 보였다. 아픈가? 자리를 옮겼나? 궁금했는데 지난주 그를 다시 만났다. 구걸을 잠시 멈춘 채 새로 사귄 여자 친구와 고가도로 아래 양지 바른 언덕 풀밭에 앉은 두 사람, 제프는 빗으로 여자의 거칠고 긴 머리채를 빗기고 있었다. 빗기고 또 빗기고… 나는 이보다 한가롭고 사랑스런 신체 언어를 본 적이 없다. 이것이 나의 신체 언어 오해라고? 오해라도 뭐 행복한 오해가 아닐는지? ❣

– 김범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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