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어떤 심리학자들이 한 가지 실험을 했다고 합니다. 물이 담긴 항아리에 쥐를 넣고 완전히 캄캄하게 하였더니 쥐는 1시간이 채 되기 전에 죽었다고 합니다. 체력이 안 돼서가 아니라 살기를 포기한 절망감 때문에 그렇게 빨리 죽은 것입니다. 그러나 항아리 속으로 아주 미세한 한 가닥의 빛을 비추고 있었더니 쥐는 38시간을 생존했다고 합니다. 뭔가를 기대하고 포기하지 않는 소망의 힘이 이처럼 대단한 것이란 증거입니다.
우리들도 비록 젊은 나이 30대 40대라도 새 일을 할 의욕이 없고 가족이나 이웃에게 요구만 하거나 사회문제나 나라의 일에 대해 불평만 늘어놓는 사람은 나이에 관계없이 이미 노화가 가속화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마음에 허무감과 무의미가 찬만큼 당신은 늙어가고 있으며, 마음에 희망이 있는 만큼 당신은 젊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이웃에 고마움을 느끼는 만큼 당신은 젊었고 불평과 짜증이 있는 만큼 당신은 늙어 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마에 생긴 주름이 아니라 당신의 마음에 생긴 주름입니다. 우리의 마음의 주름을 펴야 합니다. 내일에 대한 꿈과 비전을 가지고 믿음으로 우리의 삶과 신앙을 방해하는 것들을 분별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어 주님께서 원하시는 길로 가는 것입니다.
인생은 뜻하지 않은 갈등으로 어떤 선택과 결정을 내리느냐가 중요합니다. 여기 그 대표적인 케이스가 등장합니다. 아브라함과 롯의 선택입니다. 한 번의 선택이 영원을 결정지은 것입니다. 인생은 선택의 결과입니다. 어느 날 아브라함과 롯은 선택적 기로에 서게 되었습니다. 그들이 운영하던 목축업이 잘 되어 소위 영토 싸움이 일어난 것입니다. 양떼는 많아지고 있는데, 양떼를 먹일 풀이 문제가 된 것입니다.
창세기 12장에서는 가난의 문제로 시험거리가 왔지만, 13장에서는 부요의 문제로 시험이 온 것입니다. 이런 난감한 갈등 구조 속에서 아브라함과 롯의 선택은 영원한 지평선을 긋게 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약속의 땅 가나안 평원을 선택했고, 롯은 환락의 도시 소돔 성을 선택했던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고급한 선택을 했고, 롯은 저급한 선택을 한 것입니다. 우리들도 이와 같은 선택을 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어떤 선택이 하시겠습니까?
1. 롯은 세상 편리를 선택하나, 아브라함은 믿음의 길을 선택합니다
이미 말씀드린 대로 양떼를 방목할 땅이 좁은 관계로 둘 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새로운 개척을 위한 결정이 필요했습니다. 우선 아브라함은 조카 롯에게 기득권을 줍니다. “네가 오른쪽으로 가면 내가 왼쪽으로 가고, 네가 왼쪽으로 가면 내가 오른쪽으로 가겠다.” 이때 롯은 얼른 선취권을 장악합니다. 그는 평소에 가보고 싶었던 한 장소를 선정합니다. 그곳은 그 당시 최고의 환락도시 소돔 성이었습니다(10절). 그는 믿음으로 살기보다는 세상 향락을 즐기며 살기를 선택했던 것입니다. 롯은 하나님을 예배하는 신앙생활에 갇혀 살기보다는 세상 재미를 즐기며 살기를 선호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가 진짜 신앙인지를 아는 방법 중에 하나가 있다면, 그가 무엇을 즐기는지를 보면 압니다.” 그래서 롯의 일기에는 그가 하나님께 단을 쌓고 예배드렸다는 기록이 전혀 나오지 않습니다. 롯은 도덕적이고 영적인 차원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는 결정적인 순간에 신앙적인 가치관 없이 세속 문화 속으로 빠져 들어간 것입니다.
반면에 아브라함은 모든 일을 믿음으로 결정하는 사람입니다. Alan Stibbs 목사님은 “롯은 자신의 선택의 한계 속에서 행했으나,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주시는 길이와 넓이 속에서 행했습니다.” 인류 역사에 믿음의 거인과 영웅으로 기억되는 자들은 하나같이 믿음의 길을 선택한 사람들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그 길은 좁은 길입니다(마태복음 7:13-14). 인기가 없습니다. 때로는 힘든 길이요, 고독한 길입니다. 고난의 길이기도 합니다. 그래도 믿음의 위인들은 다 그 길을 걸었습니다. 모세가 그랬고, 바울이 그랬습니다. 그러나, 롯은 세상 향락이라는 넓은 길을 선택했고, 아브라함은 신앙의 좁은 길을 선택했던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우리에게 상기시켜주는 삶의 모델은, 그가 무엇을 결정하든지 믿음의 길을 선택한다는 점입니다.
오늘 우리도 직장을 선택하고, 사업을 선정하고, 결혼 배우자를 확정하는데 있어서 반드시 믿음의 길을 고수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심지어 집을 사서 이사하는 과정에서도 교회생활을 중시하는 거룩한 결정을 하시기 바랍니다.
케네디 대통령 취임식 때 프랑스의 드골 대통령이 케네디를 축하하며 이렇게 말해주었습니다.
“케네디 대통령 각하, 당신은 세계에서 가장 큰 권세를 쥐고 있습니다. 당신 손에 있는 권력으로 세계의 역사와 운명이 좌우됩니다. 당신은 노련한 전문가인 수많은 보좌관을 데리고 있습니다. 만일 문제가 생기면 그 많은 보좌관들이 제각기 전문적인 지식을 당신에게 제공할 것입니다. 그러나 당신이 이 사람 저 사람 말에 귀를 기울이면 쉽게 결정을 내릴 수 없게 됩니다. 당신은 당신을 보좌하고 있는 사람들의 말을 모두 경청해야 합니다. 그러나 판단을 내려야 할 때는 아무도 없는 곳에서 혼자 하나님 앞에 묵상하고 가슴 깊은 곳에서 울려나오는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오늘 우리는 수많은 선택의 기로에 설 때마다 주님의 음성을 듣고 믿음으로 결정하시기 바랍니다.
2. 롯은 자기 욕심을 선택하나, 아브라함은 사랑을 선택합니다
롯은 아브라함의 조카입니다. 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신 천혜 고아가 되었기에 큰아버지께서 아들로 키워주신 것입니다. 그런데도 롯은 결정적인 순간에 자기 욕심만 챙깁니다. 더구나 그 때 큰아버지 아브라함의 연세는 벌써 75세가 넘은 노령입니다. 이처럼 롯이 배은망덕한데도 아브라함은 사랑을 선택합니다. 본문 8절에서 아브라함은 혈육의 사랑을 호소합니다. “우리는 한 핏줄이다!” 여기 아브라함이 보여주는 사랑의 본질은 자기희생입니다. 롯이 이기주의자입니다. 세계적인 심리학자요 정신의학자인 칼 메닝거는, “인간의 모든 문제 밑바탕에는 이기심이라는 것이 깔려 있다”고 지적합니다. 우리가 남을 사랑한다는 것은 고통 받고 배신당할 것을 각오해야 합니다. “계란을 깨지 않고서 오믈렛을 만들 수는 없다”는 서양 격언이 있습니다. 사랑은 곧 희생입니다. 형이상학적 희생이 아닌, 실제적 희생이요, 소위 자기희생입니다.
미국의 사회심리학자 Erich Fromm은 그의 명저 「사랑의 기술」에서 사랑을 다섯 가지로 특징짓고 있습니다. “첫째는 관심을 가지는 것이요, 둘째는 책임을 지는 것이요, 셋째는 존중하는 것이요, 넷째는 이해하는 것이요, 마지막 다섯째는 주는 것이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 이 시대의 특징은 사랑의 결핍입니다. 철저한 이기주의입니다. 그리고 개인적 이기주의보다 무서운 것이 집단 이기주의입니다. 그러나 고린도전서 13장 5절에서는 “사랑은 자기의 유익을 추구하지 않는다”고 정의합니다. 사랑은 자기 욕심을 버리고, 기꺼이 베푸는 것입니다. 아프리카 대륙을 선교한 D. Livingston에 대해서도 원주민들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가 무슨 말을 했는지를 다 기억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기억합니다. “그가 우리를 사랑했음을!” 아브라함은 조카 롯을 일평생 순수하게 사랑했습니다. 사랑으로 중보 기도했고, 가슴의 사랑으로 축복해주었습니다.
3. 롯은 현실을 선택하나, 아브라함은 미래를 선택합니다
우리가 오늘 본문의 전후문맥을 보면 아브라함의 조카 롯은 당장 눈앞에 보이는 외부적 환경만을 우선하는 근시안적 판단과 선택을 합니다(10-11절).
롯은 나무는 보았는데, 숲은 못 본 것입니다. 롯은 세상은 보았는데, 하나님은 못 보았습니다.
롯은 오늘은 보았는데, 내일은 보지 못한 것입니다. 롯은 미시적 선택을 했고, 아브라함은 거시적 선택을 한 것입니다.
F. Roosevelt도 사람이 성공하려면 3F를 가져야 한다고 말합니다.「Faith, Friend, and Future」비전이 없는 사람일수록 현실에 안주하고, 꿈의 사람일수록 미래지향적이어야 합니다.
오늘 우리도 눈을 들어 멀리 바라보는 미래지향적인 그리스도인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멀리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 속에는 롯과 아브라함이 공존할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진솔하게 고백하듯이 소위 육체의 소욕과 성령의 소원이 팽팽하게 공존하는 것입니다. 이제 내 속에 잔재하고 있는 롯은 죽어야 하고, 아브라함이 살아나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내 인생의 질을 결정합니다. 아브라함은 더 고급한 선택을 함으로 훨씬 더 성숙한 사람이 되었고, 하나님께서 크게 쓰시는 거인이 되었던 것입니다. 우리 모든 성도님들도 아름다운 선택으로 주님께서 주시는 은혜와 축복을 받으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