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새

큰 짐 나르는 데는 노새만한 동물이 없다. 암말과 수탕나귀 사이에서 태어난 노새는 적게 먹고 엄청난 노역을 하는 능력 때문에 3000년 전부터 짐 나르는 동물로 쓰였다. 하지만 또 노새만큼 서글픈 삶도 없다. 등이 벗겨지도록 일하다 힘이 쇠하면 곧장 폐사당하고 만다. 새끼를 낳을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서양에선 작은 트랙터나 광산의 갱차를 노새라는 별명으로 부른다. 여자들이 신는 굽 높은 슬리퍼 별칭도 노새(mule)다. 하나같이 작은 몸피에 큰 노고가 필요한 것들이다.

요즘 가장 위험한 노동을 하는 노새들은 국경을 넘어 전 세계를 무대로 하는 마약운반책이다. 오래전, 영국 맨체스터공항. 이슬라마바드를 출발한 파키스탄 항공 여객기가 도착하자, 입국장엔 긴장감이 흘렀다. 보안 직원들은 옷 가방 하나를 들고 혼자 들어오던 10대 소녀를 붙잡았다. 가방을 뒤지자, 13㎏이나 되는 헤로인 뭉치가 나왔다. 운반책은 겨우 13세. 사상 최연소 기록이다.

영어 잘하고 돈 잘 쓰는 멋쟁이 외국인 사업가에 혹해 ‘가방’을 들고 해외로 나갔던 한국 여성들이 실은 국내 나이지리아인 마약밀매조직의 노새 노릇을 했다. 공짜 여행 제안에 넘어간 경우도 있다니, 경솔함을 탓할 만도 하다. 의심을 덜 받는다는 이유로, 요즘 마약 운반 노새는 많은 경우가 여성이고, 나이도 점점 어려진다. 세계 곳곳에서 노새 노릇을 하던 여성들이 곤욕을 겪고 있다.

방콕의 돈무앙 공항에서 도쿄행 비행기를 갈아타려던 영국 여성 샌드라는 헤로인 86g을 은밀한 부위에 감춰 넣은 걸 들켜 25년 형을 선고받고 태국에서 복역 중이다. 20g만 넘으면 사형까지 언도할 수 있는 게 현지법이었지만, 모국 정부의 외교 노력으로 그나마 형량이 줄었다. 방글라데시에서 체포된 미국 여성 엘라이다는 나이지리아 남자가 자기 몰래 가방에 마약을 넣어놨다고 주장, 5년을 복역한 뒤 풀려났다.

사람의 위를 가방으로 쓰는 콜롬비아의 마약밀매조직은 위 근육 단련과 배설 훈련을 시키는 노새 학교까지 운영한다고 한다. 자신이 노새로 사용될 수도 있다는 냉정한 현실을 몰랐던 이들은 지금 브라질과 영국, 일본 등지에 수감돼있다. 제발 어머니에게만은 알리지 말아 달라면서도 ’벌 받더라도 고국에서 받고 싶다’는 애원의 소리가 많은 사람들에게 경종을 울릴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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